2023년 6월 30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강론 말씀

오늘은 제가 사제 서품을 받은지 17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당시, 나이 많은 신부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성사가 없으면 신부가 아니다. 17년 동안 이 말씀은 저와 함께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잘 모르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해야 할 역할들이 많습니다. 회사의 사장님처럼 조직을 운영하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사무적인 역할요. 특히 스위스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돈이 들어오고, 많은 직원들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성사를 모시는 일이 곁가지가 되어버리고, 사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제에게 가라고요. 그리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치라고요. 이것은 사제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사제들은 사람들에게 예물을 받고 성사를 모십니다. 나머지 다른 일들은 그냥 종속적일 뿐입니다.

2023년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강론 말씀

오늘 복음에서 우리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넓은 문은 길이 널찍하지만 멸망으로 이끕니다. 마치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롯처럼 말입니다. 롯이 선택한 땅은 넓고 물이 넉넉했습니다. 그리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땅으로 더 나아갑니다. 땅이 넓고, 광대합니다, 그렇지만 멸망으로 이끕니다. 반대로 아브람은 옳은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약속된 땅으로 갑니다.

2023년 6월 23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강론 말씀

저에게 매우 부유한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돈 이야기를 합니다. 인생에 여러 다른 주제도 많은데도, 그의 관심사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정말 좋은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우리는 같이 점심을 먹고,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데, 역시 친구는 다른 나라에서 사업 계약을 따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것으로부터 저는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요. 그는 그렇게 자라고 성장해온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향하고 무엇에 관해 이야기 하는지를 보면,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생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 어떻게 살 것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2023년 6월 22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강론 말씀

강론말씀 > 기도는 단순한 실행이 아니라, 신학적인 구조를 지녀야 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 기도가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마르틴 루터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그는 미사를 할 때, 아무도 없이 혼자서 15분 동안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단 한번, 토요일 아침에 몰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회계, 복사일, 강론 준비 등 바빠서 그랬을 수도 있겠죠. 그에게 기도는 의무와 성과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치료(구원)이었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에, 기독교의 기도는 개인주의의 모양을 띠게 되었습니다. 내가 신 앞에서 서고, 내가 돌봅니다. 우리가 아니라 ‘나’입니다.

2023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일 강론 말씀

인사말씀 > 오늘 입당성가(스위스의 독일어 가톨릭 성가책 509번)에 나오는 가사(Weck die tote Christenheit aus dem Schlaf der Sicherheit)처럼 기독교가 죽어있습니다. 기독교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도 기독교는 죽어있습니다. 오늘 햇볕이 쨍쨍한 일요일, 미사에 나오신 여러분들. 주교나 사제들이 아니라, 실천하는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여러분들이 기독교를 다시 깨울 수 있습니다. 입당송 가사처럼, 안심의 잠에서, 죽은 기독교를 깨울 수 있습니다. 오늘 어린이들은 1층에 가서 교리공부를 듣습니다.

2023년 6월 16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강론 말씀

인사말씀> 오늘 미사는 예수님의 성심을 기념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을 기념합니다. 우주의 중심은 예수님의 성심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중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예수님 성심의 일부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숨쉬고, 예수님처럼 살고 있나요? 오늘 90살 생일을 맞으신 우리 자매님을 위해 미사를 봉헌합니다. 자매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

2023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강론 말씀

인사말씀> 오늘은 안토니오 성인의 축일입니다. 그분은 설교가 뛰어났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미사를 듣는 견진교리반 학생들이 그러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미사 지향은 이 안토니오 신부님, 조 안토니오 신부님,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안토니오 형제를 위해 봉헌합니다.

2023년 6월 11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 말씀

오늘날 유전자연구는 수명을 결정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발전했다고 합니다. 쥐와 같은 설치류는 이미 유전자조작으로 늙게, 심지어는 젊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 기술을 포유류에게 시도하고 있고, 언젠가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겁니다. 그 때는 불사의 삶이 의료서비스의 한 영역으로 취급되겠지요. 물론 이미 상용되고 있는 기술도 있다고 합니다.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겁니다. 지속적으로만 하면 90세의 나이에 60세의 건강을 가진다고 하더군요.

2023년 6월 8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강론 말씀

유대인들이 토라에 나오는 규칙, 모세의 계율을 세세하게 진실하게 지키는 것이 참 인상깊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세의 계율을 해석하고 지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계명에 대해 여쭙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계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랑이 있나요? 유대인들의 열성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저는 일요일에 가끔 피터폴 성당에 미사를 하러 갑니다. 시내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쓴 유대인들을 많이 봅니다. 이 분들이 신앙에 갖고 있는 열성에 대해 존경심이 듭니다. 그들은 계명을 사랑합니다.

2023년 6월 2일 연중 제8주간 금요일 (예수성심미사) 강론 말씀

오늘 복음은 상당히 길지만, 오늘날 스위스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 팔면서, 환전 등으로 많은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유대교 관습을 생각해 볼 때, 정말로 상상 밖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쫓아내십니다. 이것은 옛날 이야기일 뿐 아니라 오늘날 독일어권 나라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복음에서는 사람들이 금전거래을 통해 많은 이익을 취하였지만, 심지어 현재 이 나라들에서는 많은 종교세를 통째로 거두니까요.

2023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 (청소년 주일) 강론 말씀

“답이 없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적용되는 말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지만, 그들은 여전히 집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히키코모리들이라도 된걸까요? 하지만 답은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이 제자들이 성령을 받더니 비로소 선포활동을 시작합니다. 지난 복음들을 통해 주님이 지시하신 명은 “세상 끝까지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드디어 알려 주십니다. “죄를 용서해라.” 사도들, 사제들,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세상 끝까지 가서 죄를 용서하는 겁니다. 이 사명에 대해 한번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2023년 5월 14일 부활 제6주일 강론 말씀

휴가 차 한국에 있으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수사님들, 신부님들의 근황을 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한 수사님이 특별행사를 준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동해 찾아봤습니다. 신자들을 위한 즉문즉답 행사에 관한 소식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스님들의 영업방식을 벤치 마케팅하신 겁니다. 예전에도 그런 끼를 보이기는 하셨는데 그 사이 더 발전하셨다고 생각하고 내심 웃었습니다.

2023년 4월 23일 부활 제3주일 강론 말씀

주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레아로 보내신 이유가 오늘 복음을 통해 비로소 드러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단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그들이 티베리아 호숫가에 모여 있다고 전합니다. 이방인은 갈릴레아 호수를 티베리아 호수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호수를 갈릴레아 호수라고 불렀습니다. 갈릴레아로 온 겁니다. 구글 지도로 따지자면 약 150킬로미터를 걸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왔기는 왔는데 무엇을 하고 있나요? 최소 일곱 명의 사도들이 그냥 모여 있습니다. 그러다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하고 말합니다. 할 일도 없으니, 더 짜증나기 전에 그냥 나가보겠다는 말투로 들립니다. 여기에 다른 사도들이 호응합니다. “우리도 함께 가겠소.” 같은 심정인 겁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지긋지긋해서 나오기는 나왔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는 겁니다. 아침까지 그렇게 허탕을 칩니다.

2023년 4월 22일 부활 제3주일 특전미사 강론 말씀

인사말씀> 부활절 후에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루카복음 24장). 저희가 오늘 미사를 드리는 이 Kapelle Jonental는 14세기에 지어졌고, 이 성당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나쁜 사람들이 성모상을 훔쳐서 Jonerbach강에 버렸는데 Jonental강에서 다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2023년 4월 9일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말씀

지난 화요일 저녁에 양파를 썰면서 성목요일에 어떤 강론을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어느 날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특별한 것을 보여줄테니 학교가 끝나고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어떠 아파트단지 놀이터였습니다. 그 놀이터는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친구가 저를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아래를 내려다 보라고 하더군요. 그곳에는 한 수용시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다니는 게 보였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들이 정신지체를 겪는 사람들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묻더군요. “쟤네들 웃기지?” 제가 대답했습니다. “어, 웃겨”. 이 기억이 떠오르자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제가 열 세살 나이에 괴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35년 전의 일을 주님이 되새겨 주신 겁니다.

2023년 4월 7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강론 말씀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여름이면 과수원에서 일하곤 했었습니다. 과수원 벽 근처에서 많은 과일들을 모았습니다. 어느 날, 신기한 것을 보았습니다. 농부아저씨가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나무들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다음 날에도 보고, 계속 해서 항상 보았습니다. 그래서 왜 나무를 흔들까 궁금하던 차에, 농부아저씨에게 여쭤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째서 과일 나무를 흔드시냐는 제 물음에, 농부 아저씨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무에 도전과 자극을 주고 도발해야, 더 많은 과일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무에 과일이 거의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2023년 4월 2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말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 - 망치, 회초리, 십자가 등을 우리는 마음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고발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우리의 고발에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발한 것에 대하여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하느님께 여쭈셨지만 하느님은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침묵 속에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침묵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2023년 3월 26일 사순 제 5주일 강론 말씀

평화를 빕니다. 하느님은 예외를 허용하십니다. 오늘 라자로가 좋은 예입니다. 하느님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은 예외를 허용하시는데 매일 예외를 허용하시면 아주 혼돈스러울 것입니다. 매번 무덤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무덤을 뚫고 다시 일어난다고 상상을 해보십시오. 보통 우리의 세상은 자연의 법칙에 따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의지는 확실하시고 이 자연의 법칙과 예외적인 것 두 양쪽을 왔다갔다 하실 수 있습니다.

2023년 3월 19일 사순 제 4주일 강론 말씀

오늘 복음에는 주님 덕분에 눈을 뜨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빛을 달라고 여쭙습니다.

2023년 3월 12일 사순 제 3주일 강론 말씀

마르코 복음 14장 13절에서 주님께서는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따라가”면 파스카 만찬이 열리는 장소에 이를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남자를 따라가라고 하셨을까요? 유대교에서 물을 길러 가는 것은 여자들의 일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남자가 물을 길어가니 그 사람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겠죠. 제자들이 따라갔던 그 남자는 아마 수도자였을 겁니다. 오직 수도자들만 스스로 물을 길어 왔습니다. 그런데 물을 길어 온다는 것, 그것은 과연 어떤 일이었을까요? 과연 이 여인은 기꺼운 마음으로 우물가에 왔을까요?

2023년 2월 26일 사순 제 1주일 강론 말씀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덕론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논합니다. 어리석음은 사추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총명함과 대칭관계에 있는 악덕입니다. 어리석음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아둔함입니다. 아둔한 사람은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모르고, 일을 처리하더라도 오히려 엉망으로 합니다. 정신이 흐리멍텅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이 색(色)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감각적 만족에 대한 큰 관심은 정신을 흐리게 만듭니다. 정신이 흐리니 일처리가 원만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다른 종류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간교함입니다. 이 아둔한 사람과는 달리 부지런하게 움직여 일처리를 잘 하면서 능력을 과시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 사람은 자기만 알고 다른 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혼자 잘난 줄 아는, 간교한 어리석음의 원인을 토마스는 ‘인색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말하는 겁니다.

2023년 2월 12일 연중 제6 주일 강론 말씀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그것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살인은 당연히 안 되고 성을 내기는 커녕 음란한 생각조차 금하십니다. 완덕의 삶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본인 자신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요구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우리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오시면서 이렇게 완덕에 이른 분을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

2023년 1월 22일 설 강론 말씀

얼마 전 한국 뉴스를 듣다 146번 버스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제가 휴가 중 종종 이용하는 버스입니다. 노원역 홍콩반점이 솜씨가 좋습니다. 거기에 갈 때면 이 버스를 탑니다. 그 옆에 있는 반찬가게에 갈 때도 이 버스를 탑니다. 그런데 이 버스 노선이 좀 독특합니다. 아마 가장 긴 노선을 가진 시내버스가 아닌가 싶은데요. 상계동 주공 APT 7단지에서 출발합니다. 중계와 먹골을 지나 건국대로 향합니다. 그 후 청담대교를 타고 한강을 건너 청담동을 거쳐 강남역에 도착합니다. 서울 외곽과 강남을 연결하는 긴 노선인 겁니다. 또 여기에 타는 사람들도 남다릅니다. 낮에는 일반 버스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새벽은 다릅니다. 언젠가 운동하려고 일찍 나온 적이 있는데 사람들을 한 가득 태우고 가더군요. 수락, 의정부 등에 있는 청소 노동자들이 새벽에 이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청소일을 가는 겁니다. 그래서 첫 차는 4시 5분에 있습니다 종점인 강남까지 늦어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일찍 출발하는 시내버스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2023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강론 말씀

2004년, 저는 서울 제기동에 있는 행려자 식당에서 약 일 년을 일했습니다. 하루에 약 100-150명의 행려자들이 와서 점심을 해결하는 곳입니다. 수사님들께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얻어 운영하고 계십니다. 제 일은 문지기였습니다. 클럽 앞에 사람들이 긴 줄로 서 있듯 여름이고 겨울이고 식당 앞에는 긴 줄이 있습니다. 자리가 나면 한 명씩 들어가 앉습니다. 술을 마셨으면 들어가는 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감시하는 게 제 일이었습니다. 식당 출입을 위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500원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2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강론 말씀

성탄 카드가 많이 도착하는 시기입니다 어제도 우편물이 몇 개 와 있더군요. 그 중 하나는 세무서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성탄 전날 세금고지서를 받으니 그리 신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지난 해 52.80프랑의 세금을 덜 냈으니 1월 9일까지 납부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세상의 로고스입니다. 정확히 내용을 전달하고 요구합니다. 사실 이런 명료함이 없다면 국가가 운영될 수 없겠죠. 과학도 명료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혜택을 안겨줍니다.

2022년 12월 11일 대림 제 3주일 강론 말씀

영화 ‘목자이자 도살자’의 배경이 된 사건이 있습니다. 198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어떤 젊은이가 7명의 사람들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범행을 저지른 이는 사형 집행을 담당하는 간수였습니다. 사람들은 죄수의 사형 집행을 밥 먹듯 하던 이라 살인도 서슴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변호사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범인의 삶이 더욱 자세하게 조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형을 집행할 뿐만 아니라 사형수들을 돌보는 역할도 했던 것입니다. 편지를 전해주고 글을 모르는 죄수들의 말을 받아 적어 가족들에게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싸우면 말리고 아프면 약도 챙겨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 신뢰와 정도 커져 우정이 싹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명령을 받아 그가 돌보았던 사형수들의 교수형을 집행하는 게 그의 일이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이 현실로 인한 트라우마가 그가 저지른 범죄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변호사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재판장에게 말합니다: “그 누구도 목자이면서 도살자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2022년 11월 27일 대림 첫 주일 강론 말씀

여러분 평안을 빕니다. 여러분은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에 시간을 잘 보내셨나요? 저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많은 양의 광고들을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제가 블랙 프라이데이에 물건을 사지 않는 편인데, 수많은 유혹을 뿌리쳐야 했습니다. 우리가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무엇을 사야 할 지 초조해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아들이 오시는 그 순간 때문에 초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반성합시다.

2022년 10월 23일 연중 제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강론 말씀

평안을 빕니다.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의 입구에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실제로 수도자, 성직자 등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이제는 나 자신을 찾아갈 시간이다.” 라고 말을 하며 조용한 곳을 찾아 시간을 갖습니다. 제가 1996년 수도원에 간 뒤로 ‘나 자신을 찾아갈 시간이다.’ 말을 하며 시간을 갖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제대로 찾은 사람들은 못지 못했습니다.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2022년 10월 9일 연중 제28주일 강론 말씀

평화를 빕니다. 이번 제1독서에는 시리아 사람 ‘나아만’ 이 나옵니다. 제가 오늘 시리아 출신 가정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왔습니다. 시리아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그 가족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분들도 저도 외국인이기에 외국인으로서 사는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2022년 9월 11일 한가위 미사 강론 말씀

찬미예수님. 올해는 추석이 빠르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여름이 끝나자마자 추석이 다가왔는데 저는 추석인 줄도 몰랐습니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추석 인사들을 보고 추석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지난 며칠 동안 제가 일하는 성당에서 견진 받는 청년들과 디센티스에 있는 한 수도원에 있었습니다.

2022년 8월 21일 연중 제21주일 강론 말씀

찬미 예수님. 여러분 휴가 잘 다녀오셨나요? 저도 한국에 휴가를 잘 다녀왔습니다. 휴가를 다녀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쾌락은 영원할까요? 쾌락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저도 노는 것이 일주일 지나면 할 게 없더라고요. 더 이상 먹을 게 없습니다. “여기 계속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2022년 6월 12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말씀

평화를 빕니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시작에 지혜는 한 차원 이전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지혜는 흔히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은 생생한 힘이고 일깨움을 전달해주는 거룩한 힘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으로부터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거행하면서 거대한 드라마를 거행 하는 것입니다.

2022년 5월 22일 부활 제 6주일 강론 말씀

평화를 빕니다. 오늘 제1독서를 들으시고 여러분들이 좋아하셨을 듯 합니다. 바오로께서는 구원받기 위한 조건들을 몇 가지 이야기 하셨습니다. 바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고, 간음을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도 먹어도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2022년 4월 17일 부활주일 강론 말씀

평화를 빕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사순 시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부활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항상 느끼는 것은 사순 시기를 준비하느라 몸이 힘들어도, 전례를 준비할 수록 부활의 은총이 더욱 커지는 것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시기를 되돌아보시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용서를 청하시고 다가오는 부활을 열정으로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말씀

평안을 빕니다. 오늘 복음은 강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야기 하나로 모든 것을 시사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큰 특징들이 있는데 그 중에 첫번째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2022년 3월 27일 사순 4주일 강론 말씀

찬미 예수님! 우리는 지금 사순 4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 4 주일은 레타레 (Laetare) 라고 하며 이는 기뻐하는 주일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부활을 미리 바라보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2022년 2월 27일 연중 제8주일 강론 말씀

여러분 평화를 빕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왔듯이 우리들의 말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 평가가 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나옵니다.

2022년 2월 13일 연중 제6주일 강론 말씀

행복하신가요? 몇 주 전만 해도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격리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많이들 격리 하셨습니다. 지하주차장엔 차들이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격리도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고 행복의 하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신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갖고 있고 자유는 행복을 향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상 대단한 사상가들 중에서도 행복이 뭐라고 정의를 내린 사람이 없습니다.

2022년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강론 말씀

오늘 햇빛이 좋습니다. 이런 아름다움 안에서 우리는 기적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저는 여태 살면서 실제로 2-3번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2022년 1월 1일 신년미사 강론 말씀

찬미 예수님. 제가 오늘 복음을 잊었습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어떤 신부님이 강론 끝내고 그냥 미사를 끝내셨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뭔가 이상했던 신부님이 제의방에 있던 자매님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그 자매님은 미사가 참 좋았다고 대답했더랍니다.

2021년 12월 25일 성탄 미사 강론 말씀

찬미예수님. 저는 어제 어떤 한 가정에 초대되어 저녁식사를 하고 성탄 전야 미사를 드렸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가정집들에서는 다들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2021년 12월 12일 대림 3주일 (자선 주일) 강론 말씀

찬미 예수님. 오늘 연말 달리기 행사로 늦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교통이 막혀 차 안에서 30분 넘게 오면서 화가 나는 저를 돌이켜 보면서 ‘이 세상에서 사제로 사는 것이 쉽지 않구나.’를 느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옛날 시절 신부님들은 윽박지르고 성격이 있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여기도 그랬다고 합니다. 과거에 사제들이 고압적으로 다뤘던 때가 있었습니다.

2021년 11월 28일 대림 첫째주일 강론 말씀

벌써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금방 모든 대림초에 불이 붙는 성탄이 다가올 것입니다. 시간은 신비롭습니다. 한편으로는 느리게 가는 듯 하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빠르게 갑니다. 시간은 두 가지로 나눠 집니다. Quantity 적인 그냥 지나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Quality 측면에서 밀도 있는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삶을 사셨나요? 길기만 한 삶을 사셨나요, 아니면 열매 있는 삶을 사셨나요?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 안에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농밀한 삶이 되도록 겸손히 청해야 겠습니다.

2021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강론 말씀

예수님이 취리히에 오시거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본슈테텐에 오신다면, 예수님은 어떠실까요. 예수님은 우리 공동체를 보고 기뻐하실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슬피 우실까요? 정답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기뻐하시기를 웃으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강론 말씀

여러분 휴가 잘 다녀오셨나요? 휴가 중에 복음을 선포하셨나요? 우리는 전교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발 만큼 아름다운 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지역을 한바퀴 돌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땅 중에서 최초로 점령된 곳인 예리코로 오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눈 먼 이 바르티매오를 고치십니다.

2021년 10월 10일 연중 제28주일 강론 말씀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묻는 재산이 많은 젊은이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포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끝없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신비이기도 하고 악이기도 합니다.

202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강론 말씀

너무 반갑습니다. 지난 3주 동안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평소 생활을 하지 못하여서 참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성당에 속해있지 않으면 성당 미사에 참여를 못합니다. 그렇게 3주를 지내고 돌아올 때 즈음 되돌아 보니 먹고 놀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때 감출 수 없는 회의가 들고 이를 감추려는 노력은 헛됩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와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2021년 7월 25일 연중 제17주일 강론 말씀

찬미예수님. 생각보다 많이 오셨네요. 저도 잠시 2박 3일 독일 모젤(Mosel)에 일도 있고 잠시 휴식을 할 겸 다녀왔습니다. 숙박을 하고 아침을 먹다가 이가 깨졌습니다. 그 길로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서 이를 치료 받았습니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기대가 깨진다는 것이 참 씁쓸했습니다. 실망스럽고 힘들었습니다.

2021년 5월 23일 성령강림대축일 강론 말씀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이자 또한 미사를 통해 라우렌시아 자매님을 기리고 있습니다. 오늘 부른 부속가 4절에 ‘병든 것을 고치소서’ 내용이 나옵니다. 라우렌시아 자매님은 마지막 3개월을 질병 고통 가운데 수 차례 수술을 받으셨지만 잘 참으셨고 그 와중에 교우들이나 저에게 폐가 될까봐 일부러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라우렌시아 자매님이 주님 품으로 잘 가셨다고 믿고, 치유와 기쁨의 시간을 갖으시길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많이 야위어 보이신 마지막 모습이 마음이 아팠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댓가로 영원한 삶을 주실 것입니다.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강론 말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의 벗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까지 들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벗은 일반 친구 사이의 우정과는 다릅니다.

2021년 4월 18일 부활 제 3주일 강론 말씀

예전에 제가 광화문 광장 쪽 스타벅스에서 약속 때문에 커피를 마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담긴 머그 잔에 자국이 있었는데 여자 립스틱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귀찮았던 저는 그냥 커피를 다 마셨고, 그 후 내려가서 직원에게 잘 닦아야 하겠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머그잔을 닦았더라도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이것을 통해 ‘아무리 닦아도 흔적이 남는구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21년 4월 3일 파스카 성야 강론 말씀

신자 여러분, 기쁜 부활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면, 결국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기쁜 부활입니다.

2021년 3월 28일 성지주일 강론 말씀

성지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 전에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입니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성지가지를 들고 예수님께 호산나를 외쳤으나 3-4일 후에 제2독서에서 이야기 하듯이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외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쉽게 변합니다. 태초에 인간은 다른 사람을 처벌하는데 사용되어 왔고 인간은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는 말

2021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강론 말씀

찬미 예수님. 요즈음 사순시기라서 영광송도 하지 않고 할렐루야도 하지 않으며 코로나 시기이기 때문에 성가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정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이 어떠하셨는지요? 아쉬운 마음이었는지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2021년 2월 21일 사순 제1주일 강론 말씀

한국에서 개신교 신자들과 얘기할 때 종종 “구원 받으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침례교나 성결교를 비롯한 많은 교파들이 세례를 강조합니다. 세례와 구원을 동일시 할 정도로 말입니다. 따라서 세례 후의 인간은 거듭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집니다. 한편 루터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그도 세례의 중요성은 인정했지만, 세례를 받아도 자유가 없어 욕망의 세계에서 헤맨다고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중간 정도의 입장을 고수합니다: 인간은 세례를 통해 원죄로부터 거듭나지만 죄의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가 실현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결정적 상처는 아니라고 봅니다.

2020년 12월 13일 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강론 말씀

이태리에는 결혼식에 신부가 늦게 도착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래야 더 행복하게 산답니다. 저도 이태리인들 혼인 예식을 거행한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보통 5-10분 정도 후 신부가 도착하더군요. 물론 더 오래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아는 폴란드 신부님은 30분을 기다리다가 참지 못해 떠나려 하는데 신부가 도착했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2020년 12월 6일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강론 말씀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제나 수녀의 역을 맡은 배우들을 볼 때 종종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수녀, 신부가 저렇게 인물이 좋을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알 듯 모를 듯한 어색함에 불편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평가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2020년 10월 11일 연중 제28주일 강론 말씀

오늘 복음에서 임금님은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를 열었고 사람들은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그야말로 큰 잔치입니다. 그 중에 미사는 잔치 중에 잔치입니다. 우리의 삶은 축제와 같습니다. 우리가 스위스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접할 수 없는 것이 축제적인 것입니다. 스위스에서는 국민성 때문인지 축제가 드뭅니다. 축제는 삶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며 주님과 함께할 때 더욱 풍요로움을 느끼고 감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미사는 축제의 핵심이며 그리스도는 우리를 초대하시는 Gastgeber(주최자)입니다.

2020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강론 말씀

빚을 져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는 분 중에 채무를 진 분이 계십니다. 그 분에 따르면‚ 채무자로서의 삶은 삶을 사는 게 아니다.’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공포감이 큽니다.

2020년 7월 12일 연중 제15주일 강론 말씀

불구경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어렸을 때는 수봉산 근처에 살았고 그곳에는 피난민도 많았으며 소방 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어렸을 적(4-5세 경) 자다가 가족이 다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동네에 불이 났던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새벽에 나와서 보았습니다.

2020년 6월 28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강론 말씀

휴가때 한국에 가서 후배 신부님들을 만나면 몸집이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신부가 되면 여러 가정을 다니면서 식사를 하는데 식사를 잘하는 것이 사제의 역할을 잘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하권에서 엘리사를 대접하는 수넴 지방의 부유한 여자가 나옵니다.

2020년 5월 24일 주님승천대축일 (홍보 주일) 강론 말씀

한국 교회는 오늘 주님승천 대축일을 거행합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셨던 주님은 다시 높은 곳으로 향하십니다. 고개를 들어 사명을 다 마치신 후 돌아가시는 그분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는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2020년 4월 12일 주님부활대축일 강론 말씀

마음에 품고 있었던 큰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절망이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 절망을 체험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라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모두 “몸을 숙여” 무덤 안을 바라보고 슬퍼하고 절망합니다.

2020년 2월 23일 연중 제7주일 강론 말씀

아주 오랜 옛날에는 극단적인 법이 우리를 지배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를 저지르면 가족 몇 대를 멸한다든지 하였습니다. 비로소 구약이 되어서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응징하는 1:1의 법이 성립되었습니다.

2020년 1월 26일 연중 제3주일 (해외 원조 주일) 강론 말씀

옛날에 이스라엘 안에서 교통이 좋은 이방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 가버나움, 몇몇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여러 가지 문화가 섞여 있어 혼란스러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꺼려하는 그 도시 중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나를 따르라.”였습니다. 한국인이냐 독일인이냐 아니면 스위스인이냐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