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반갑습니다. 지난 3주 동안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평소 생활을 하지 못하여서 참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성당에 속해있지 않으면 성당 미사에 참여를 못합니다. 그렇게 3주를 지내고 돌아올 때 즈음 되돌아 보니 먹고 놀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때 감출 수 없는 회의가 들고 이를 감추려는 노력은 헛됩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와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오늘의 복음에는 주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로 가십니다. 이것은 10개의 도시라는 뜻인데 이스라엘 외부의 이방인 지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선교를 가신 것입니다. 이방인 지역은 어떨까요? 선교사들은 이방인 지역에 가서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로 온 선교사들도 그랬듯이 구마예식을 합니다. 그 동네 마귀들린 사람들이 와서 기절을 하고 소리높여 부르짖기도 하며 귀신이 쫓겨 나가게 됩니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그것을 보며 그리스도교가 참 종교이구나 하며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도 젊은이를 치료해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젊은이를 끌고 옵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오기 싫어서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젊은이는 마귀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들린 사람은 전형적으로 말을 굉장히 많이 하거나 말을 안 합니다. 이 젊은이는 귀가 먹었고 말을 못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손가락을 젊은이의 두 귀에 넣으시고 침을 발라 엄지로 혀를 만지십니다. 이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구마의식 방법인데 예수님은 전통적인 유대교의 구마의식을 시행하셨습니다. 그리고 “ 에파타 “ 열려라 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이 부분이 첫번째라면 두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은 그 젊은이를 군중으로부터 따로 떼어 놓으셨다는 점입니다. 만일 오늘날 자기 능력을 보이고 싶은 무당들의 경우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현란한 굿판을 보이며 능력을 과시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다르십니다. 치유를 위해서는 자기의 상처받은 과거로부터 떨어져야 합니다. 자신이 지었던 죄로부터 자유로워 져야 합니다. 어떤 자매의 남편은 마약중독자인데 그 남편이 낫기 위해 마약을 같이 했던 친구들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였습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그렇게 많은 주문을 외우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 에파타 “, 곧 “ 열려라 “ 만 말씀하십니다. 마치 창세 때에 하느님이 “ 빛이 있어라. “ 라는 말씀 한마디로 빛이 만들어지듯이 말입니다. 주님의 치유는 우리가 이해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젊은이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듣지 못해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므로 치료가 됩니다. 오늘날 대화를 통해서 이해를 하면서 좀 더 나은 상태로 되고 깨달으면서 치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치유는 우리가 이해를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치유를 원하시면 간절히 청하십시오. 그리고 전능하신 주님께 맡기십시오.

네번째로는 예수님은 치료하시고 이제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내가 겪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왜 말하지 못하게 하실까요?

수도원에서는 6시에 아침 기도를 합니다. 그것을 위해 5시에 기상을 하는데 기상을 해서 보면 복도를 다니거나 산책을 하는 젊은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6시 기도 시간에 “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오리다. “ 라는 말씀으로 하루의 말을 시작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입이 당신을 찬미하기를 원하십니다. 슬퍼도 기뻐도, 이해할 수 있어도, 이해할 수 없어도 말이지요.

엊그제 저희 공동체 어느 분이 10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같은 날 저는 8세에 세상을 떠난 아이의 1주기를 기리며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도 1주일 밖에 가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서 보냈습니다. 왜 누구는 10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누구는 학교도 1주일 채 가지 못하고 일찍 떠날까요? 제가 공동체에 온 초기에 묘지에 안내를 받아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제일 먼저 안내를 받은 것은 아이들이 묻힌 묘지였습니다. 안내를 해 준 분이 그 아이들이 묻힌 묘지에 그 분의 아이도 묻혀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는 오래 살고 누구는 어린 나이에 죽고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주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입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김 토마스 형제님의 1 주기를 거행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 정서에 남의 땅에 묻히는 게 슬픈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주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과 귀를 열어주십사 청하십시오. 주님을 온전히 찬미하기 위해 말입니다. 아멘.


참고자료: 성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