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광화문 광장 쪽 스타벅스에서 약속 때문에 커피를 마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담긴 머그 잔에 자국이 있었는데 여자 립스틱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귀찮았던 저는 그냥 커피를 다 마셨고, 그 후 내려가서 직원에게 잘 닦아야 하겠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머그잔을 닦았더라도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이것을 통해 ‘아무리 닦아도 흔적이 남는구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후의 육신, 즉 새로운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몸에는 흔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와 우리가 알았던 과거가 공존하는 것이 부활한 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새로운 몸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라 공포에 떨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이 유령인지 헷갈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치 머그잔에 남아있던 립스틱처럼 남아 있는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 봤을 때 말입니다. 저라면 기적을 베풀었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입장을 바꿔봅시다. 나중에 예수님을 뵐 때 여러분이 여러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 보이시겠습니까? ‘예수님 저 요한입니다. 저는 살아 있을 때 집도 3채 마련했고 봉헌금도 많이 냈습니다. 이런 일도 많이 하고 저런 일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하실까요?

오토 합스부르크 (Otto Habsburg) 라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지막 후손의 장례가 2011 년 거행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만들어진 관을 오스트리아 빈 수도원 내에 안치를 합니다.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도원 문은 닫혀 있고 장례식을 거행하는 사람은 수도원 문 앞에 관을 놓고 문을 3번 칩니다. 그러면 수도원 원장님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그러면 예식을 담당하는 사람이 3분 가량 그가 누군지 설명합니다. 그러면 원장님이 ‘난 모르는데?’ 대답하고 그 뒤 예식 담당자가 ‘이 사람은 무슨 공부를 했고 어디에서 무슨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UN 에서 일도 했고 등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원장님은 ‘난 그 사람을 모르는데?’ 라고 대답을 하면 예식 거행자가 ‘이사람은 합스부르크가의 오토 (Otto von Habsburg), 불쌍한 영혼입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원장님이 ‘어서 들어오십시오.’ 라고 하며 문이 열립니다.

이 예식을 볼 때 저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0년 가량 유럽을 호령했던 가문도 이런 식으로 장례가 이루어집니다. 죽으면 그 사람이 안식을 취하기 위해 이것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불쌍한 영혼입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십자가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보여드리면 예수님도 거기에서 우리를 알아보십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람은 두 가지를 통해 이해한다고 하였습니다. 첫번째는 논리를 통해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예로는 1 더하기 3 은 4 이다. 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비슷함을 통해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관입니다. 즉 예수님 입장에서 ‘이 아이가 나랑 비슷하구나. 이 아이가 나의 자녀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도록 무엇보다 예수님과 비슷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상처를 만들어주는 이가 있는지요?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