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신가요? 몇 주 전만 해도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격리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많이들 격리 하셨습니다. 지하주차장엔 차들이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격리도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고 행복의 하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신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갖고 있고 자유는 행복을 향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상 대단한 사상가들 중에서도 행복이 뭐라고 정의를 내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비 중 하나가 행복입니다. 우리는 가련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뭔지도 모르는 것을 추구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복합니까? 네 행복합니다.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와서 ‘당신이 50년 전 2월 13일에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시오.’하고 요구합니다. 저는 지난 주 일요일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기억하시나요? 그런데 그 사람은 50년 전 당신은 어디에 있었고 범죄에 가담했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여러분은 당황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론인이 94세가 된 베네딕토 교황에게 50년 전 어디에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94세가 된 베네딕토 교황님은 잘 기억을 하지 못하셨겠죠. 그러자 그 언론인은 교황님을 비웃고 범죄에 가담했다고 몰아세우며 교황이었던 사람도 이렇다고 조롱하였습니다.

왜 이럴까요? 저는 스스로 2주 동안 이 질문을 던졌는데 지난 화요일에 어떤 젊은이가 기억에서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저는 인천에 살았습니다. 인천 성남동 거북 시장이라고 있었는데 그 시장 언덕 밑에 어떤 형이 항상 서 있었고 항상 웃었습니다. 왜 웃고 있었을까요? 바로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렸을 때 동생과 함께 동네 문방구에서 장난감을 사오는 길에 그 형이 동생의 장난감을 확 빼앗았습니다. 동생은 그냥 괜찮으니 가자고 했습니다. 그 형은 사실 장난감 겉 포장지를 낚아챘었습니다. 껍데기만 가진 것이죠.

많은 언론인들이 주교들도 베네딕토 교황님을 아무 근거없이 조롱하고 이 세상의 무대가 자기 것인 양 날뛰며 웃고 있는 이유는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낙태반대 운동 데모를 보셨나요? 그 분들은 조용히 걸어갑니다. 묵주기도를 하거나 십자가를 잡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편(낙태찬성 운동)을 보면 욕을 하고, 물건 혹은 쓰레기를 집어 던지고 쓰레기통을 불태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정신 줄을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했던 것인데 바로 큰 슬픔 안에 있을 때, 그 속에서 마음 아파하며 울고 괴로워하는 것이 미쳐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적인 정신 안에서 슬퍼하는 것이 정신줄을 놓고 좋아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죠. 그것을 생각하고 있자니 행복합니다. 정신없이 즐기며 날뛰는 사람들이 실제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둠 안에 있으니 불쌍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 안에서 우리가 슬퍼할 수 있는 것은 건전한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쓰러운 마음이 안에 있을 줄 압니다.

‘그러면 신부님이 정상인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누가 물어본다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여태껏 제가 말한 것을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정상입니다.’ 라고요. 미친 사람은 자기가 항상 옳다고 합니다.

요즘 ‘교회의 위기다, 신앙의 위기이다’ 등의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더 큰 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성의 위기입니다. 이성의 위기가 닥치면 자연히 교회의 위기가 따라오게 됩니다. 위험한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Netflix 구독자 수가 많아질수록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문화들을 접할수록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성을 구해야 겠습니다. 아멘.


바티칸 뉴스: 베네딕토 교황님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