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전자연구는 수명을 결정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발전했다고 합니다. 쥐와 같은 설치류는 이미 유전자조작으로 늙게, 심지어는 젊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 기술을 포유류에게 시도하고 있고, 언젠가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겁니다. 그 때는 불사의 삶이 의료서비스의 한 영역으로 취급되겠지요. 물론 이미 상용되고 있는 기술도 있다고 합니다.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겁니다. 지속적으로만 하면 90세의 나이에 60세의 건강을 가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불사의 삶이 곧 영원한 삶은 아닙니다. 불사의 삶이란 시작된 삶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삶이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거듭 새로 태어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삶의 지속이 아니라 거듭 새로워지는 영원의 영역에 참여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참여는 부활이라는 관문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교부들은 이 문제를 두고 나름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재치있는 답을 찾아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서른 셋의 모습으로 살거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실 당시의 나이가 서른 셋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그분과 같은 모습, 서른 셋, 정말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아주 젊지도, 아주 늙지도 않았고, 건강하고 성숙한, 또 두뇌활동도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서른 셋의 나이로 사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벌써 설레기만 합니다.

시간의 노예로 불사불멸의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매일 새로움이 반복되는 영원의 영역에서 서른 셋 젊은이로 싶으신가요? 저는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단, 이 영원한 삶을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역겨운 말을 할 수 있냐고 투덜대지만 주님은 양보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의 몸과 피로만 영원한 삶에 이를 수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것 만으로도 90세가 60세로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성자의 몸과 피를 모시는 이는 당연히 영원한 삶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믿으시는지요?

우리는 과연 이 말씀을 믿고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을 전심으로 진리로 받아들이신다면 기뻐할 뿐만 아니라 슬퍼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고 지냈던 많은 이들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 이면에 있는 이 슬픔이 우리 신앙의 확고함을 알려주는 척도입니다. 아멘.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