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저는 서울 제기동에 있는 행려자 식당에서 약 일 년을 일했습니다. 하루에 약 100-150명의 행려자들이 와서 점심을 해결하는 곳입니다. 수사님들께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얻어 운영하고 계십니다. 제 일은 문지기였습니다. 클럽 앞에 사람들이 긴 줄로 서 있듯 여름이고 겨울이고 식당 앞에는 긴 줄이 있습니다. 자리가 나면 한 명씩 들어가 앉습니다. 술을 마셨으면 들어가는 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감시하는 게 제 일이었습니다. 식당 출입을 위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500원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500원씩 받는다고 해서 식당이나 수사님들이 부자가 될 리는 없습니다. 이 돈은 행려자들이 본인 자신을 위해 지불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 한 걸인이 돈을 내지 않고 들어와 식사를 한다면 그는 그저 걸인으로 얻어 먹는 것일뿐입니다. 어쩌면 그는 식사를 마친 후 더 비참해진 마음으로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내고 입장한다면 손님으로 식사를 하는 겁니다. 합당한 자격과 품위를 갖추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500원은 우리가 아니라 행려자 본인을 위한 입장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굶주린 영혼을 안고 방황하는 행려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사 안에서 천상의 빵을 모실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빵을 그냥 걸인의 자격으로, 죄인의 신분으로 받아먹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자격이나 품위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면 더 큰 죄인으로 그 자리를 떠날 겁니다. 아니면 오늘 제2독서가 전하듯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의 자격으로, 심지어는 “상속자”의 자격으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500원만 내면 됩니다. 그저 하느님과 사제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됩니다. 고백성사입니다. 그러면 그 때 여러분은 그에 합당한 자격과 품위로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식 입장료 말고 비공식적 방법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에 접어 들 수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봅시다. 우리가 조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이 저를 제 고향 인천에서 쫓아냅니다. 그런 제가 팔도를 방황하다 어쩌다 큰 권력을 얻습니다. 심지어는 왕의 자리에 등극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인천으로 돌아옵니다. 저를 몰아낸 인천 친구들을 모두 다 불러 모아 심판하겠지요. 모두 다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그런데 저를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한 친구를 심문하던 중 그가 제가 없는 동안 저의 어머니를 돌봐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친구를 처벌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상을 내려 줄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지닌 신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더라도 성모님을 공경한다면, 주님은 당신 어머니의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이 어머니의 품위 때문에 우리의 죄를 못 본 척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에 대한 공경은 배반자인 인간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비공식적인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이 ‘죄인의 피난처’라고 불려왔던 이유입니다.

베드로는 열쇠를 가지고 천국 정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안을 내부를 살펴보니 자기가 들여보내지 않았던 이들이 들어와 있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성모님이 뒷문을 열어놓았다 했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목자들과 천사들의 말을 “모두 마음속에 곰곰이 간직하고 되새겼다”고 합니다. 천상의 어머니를 공경합시다. 그러면 모두 기억 하셔서, 마지막 심판 때 우리를 위해 “그래도 얘는 나한테 잘 해줬다.”고 주님께 귀띔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