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위스의 수호 성인인 브루더 클라우스 대축일입니다. 스위스는 이 날을 기념하여 주일보다 더 높은 급의 축일인 대축일을 보냅니다.

그리하여 저도 이번에 브루더 클라우스 대축일의 복음을 읽었습니다.

이 날은 역사적 한 인물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위대한 성인이자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고행을 겪고 오롯한 믿음으로 은수자의 삶을 살으셨던 성인을 기념합니다. 그 덕에 스위스가 오늘까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사를 거행하면서 브루더 클라우스 성인께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해주실 것을 청합니다.

스위스로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를 받으러 옵니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러 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접하며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원하는 존재로 될 수 있으니 따먹어라.” 라고 말입니다. 네가 원하면 다 가질 수 있다 혹은 다 될 수 있다 하는 이데올로기, 네가 원하면 나을 수 있다고,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거짓된 세상을 바라보면 힘듭니다.

제가 어느 날 유튜브를 보는데 짧은 클립이 나왔습니다. 그 클립 안에서는 비행기 안에 창가에 앉은 남자가 창밖을 바라보며 즐겁게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 옆에는 한 어머니와 딸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딸이 엄마에게 “엄마, 나도 창가에 앉고 싶어.” 이야기를 하며 떼를 씁니다. 엄마가 옆에 앉은 남자에게 공손히 부탁을 합니다. 자리를 바꿔줄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러자 남자가 이야기 합니다. “그럼요,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딸아이가 그 자리에 앉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포기하는 것’ 을 배운 세대입니다. 제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면 제가 원하는 것을 다 장바구니에 담을 때 등짝 마사지를 받곤 했었죠. 세상을 실제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가 없다는 것과 때로는 세상으로부터의 커다란 배반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에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곳에 앉고 너희도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한 할 것’ 이라고 하십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그 자리에 앉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다는 것과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 때, 변방에 있을 마음을 가질 때, 창가가 아닌 복도 쪽 자리에 기꺼이 앉을 수 있을 때, 그 영광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민자로서 스위스에 살고 있습니다. 저도 이민자로서 스위스에 사는데 장애를 갖고 삽니다. 이른바 ‘언어 장애’를 갖고 사는 것이죠.

우리 모두 우리의 어려움들,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이를 감수하고 인내할 때 언젠가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한국어: 니콜라오 데 플뤼에 성인
독일어:Niklaus von Flüe
영어:Nicholas of Flüe


참고: 오늘 복음은 매일미사에 나오는 부분이 아니라, 독일어 전례력을 기준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