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차 한국에 있으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수사님들, 신부님들의 근황을 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한 수사님이 특별행사를 준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동해 찾아봤습니다. 신자들을 위한 즉문즉답 행사에 관한 소식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스님들의 영업방식을 벤치 마케팅하신 겁니다. 예전에도 그런 끼를 보이기는 하셨는데 그 사이 더 발전하셨다고 생각하고 내심 웃었습니다.

사적인 문제를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답을 찾으려는 행동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죽 했으면 그렇게 할까 싶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을 탓하기 보다는 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성직자들, 수도자들이 무책임을 탓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잘 듣고 있으면 오가는 질문들이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 걱정, 시어머니와의 갈등,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들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질문들을 독신생활을 하는 이들이, 그래서 아이들, 시어머니, 직장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이 시원하게 답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수도자들보다 훨씬 더 잘 대답해 주실 수 있습니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시는 아저씨들, 쉬는 시간 잠깐 밖에 나와서 담배 피우는 직장인들이 훨씬 더 잘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는 답이 있고, 그 답은 그것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과연 성직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즉시 답을 찾을 수 없는 커다란 물음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런 질문을 품고 계실 것입니다. 성직자의 역할은 소소한 문제들에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이 큰 질문을 품고 있는 이들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찾고 있는 그 궁극적인 답에 함께 도달하는 것입니다. 즉각적인 답을 찾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영원한 답을 찾고 계신가요? 그러면 저희에게 오십시오. 영원하고 완벽한 답이신 그리스도께 함께 걸어갑시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의 영, 즉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그분을 보호자라고 칭하십니다. 그리스어로는 Paracletos입니다. 이 명사는 παρακαλεῖν이라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옆에 함께하면서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동반자, 위로자, 변호인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성령께서는 단지 소소한 질문에 답하시기 위해 오시는 게 아닙니다. 그분은 영원한 답을 찾고 있는 우리들을 동반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즉문에 즉답하는 동네 아저씨 정도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로 인생이라는 혼란의 길을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동반자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이번 휴가 때 보문역에서 1111번을 타고 성북동사무소으로 향했습니다. 15분이면 도달하는 짧은 거리입니다. 뒷문 바로 앞에 한 젊은 어머니와 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이 타고 있더군요. 그 여자아이는 지적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더군요. 15분 동안 한 100개의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 모든 질문들에 역시나 말도 안 되는 답들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지극한 친절과 인내로 정성껏 답해주시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저는 이 어머니 안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질문들에 재치있게 답해주는 동네 아주머니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딸이 지녔던 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동반해 주는 성직자의 모습. 사실 딸의 수많은 작은 질문들 이면에는 큰 질문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궁극적으로 알고 싶고,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았을까요? 어머니의 날, 자녀된 마음으로 축하드리며 자녀들을 잘 동반하십사 부탁드립니다.

성령도, 성직자도, 어머니도, 우리 모두는 즉흥적인 답을 주는 것 이상을 해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내로이 함께 걷는 동반자의 역할입니다. 우리가 찾는 그 영원한 그 답에 도달할 때까지 말입니다. 그 답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아멘.

3분 교리 >

이번 목요일(5월 18일)은 주님승천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열흘 뒤(5월 28일)에는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성령강림대축일을 준비하면서 9일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하세요. 5분 걸려요.

오늘 제1독서에서, 제자들이 요한과 베드로가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게 가서, 기도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치유가 되고 성령이 옵니다. 성령을 청하는 기도를 따로 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가 있습니다. 성령을 청하는 성사인 견진성사가 있습니다.

오늘, 형제님들이 정성과 힘을 다해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못 살 거든요.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합시다. 그 전에 샴페인을 따겠습니다. 최근 생신을 맞으신 루치아 자매님부터 나오세요

참고자료:

성령강림대축일

성령강림 9일기도 (5/19-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