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승천 대축일과 성령강림 대축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큰 축일들에 앞서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듯이)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들은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성령은 보호자이십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 않습니다. 보호자이신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 안에 머무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더 큰 분이 함께 동반하고 계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강합니다. 오늘 제1독서가 전하듯 더러운 영도 쫓아내고 사람들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이것을 잊고 살지는 않나요?

작년 휴가 때 성당 후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후배의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일본과 무역 전쟁이 일어나서 큰일이라고 푸념을 하더군요. 그런데 걱정을 넘어서 일본 같은 대국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무역 전쟁은 대한민국의 완승으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우리는 정치와 위생 및 시민의식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거쳐 우리나라가 이미 일본을 앞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우리의 강인함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유럽 그리스도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70퍼센트 이상이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절대다수 정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세상에 자신을 맞추려고 할까요? 패배주의 때문입니다. 세상이 교회보다 더 세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따라가려고 하는 겁니다.

얼마 전 어떤 주교님이 낙태된 아이들의 사체를 백신의 실험재료로 사용하는 제약회사를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의 한 고위성직자가 그 주교님께 말씀을 삼가시라고 말하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큰 회사들을 건드려서 좋을 것 없다는 염려에서 그런 충고를 한 것 같습니다. 성직자들이 이러니 어떻게 신자들이 강인한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이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보다 더 강합니다. 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나요? 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가치를 세상에 내세워야 합니다. 잘 준비하셔서 성령강림 대축일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과 함께 자신 있게 살아가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