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평안을 빕니다. 여러분은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에 시간을 잘 보내셨나요? 저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많은 양의 광고들을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제가 블랙 프라이데이에 물건을 사지 않는 편인데, 수많은 유혹을 뿌리쳐야 했습니다. 우리가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무엇을 사야 할 지 초조해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아들이 오시는 그 순간 때문에 초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반성합시다.

제가 여름 휴가를 8월에 늦게 갔다가 돌아 왔습니다. 여름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 발코니에 벌집이 2개가 생겼더군요. 발판 밑에 하나, 창문 밑에 하나 말입니다. 그런데 벌의 길이가 집게 손가락 만큼 길고 크기가 컸습니다. 어찌나 힘차게 날아다니던지 벌에 알레르기도 없고 딱히 벌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지 않는 제가 아예 발코니 쪽으로 나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소방서에 연락을 했습니다. 전화로 다급한 상황임을 알렸는데 소방관이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일단 침착하십시오. 겨울이 옵니다.” “Der Winter kommt.”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10월에 벌써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달만 기다려보자.’ 하며 기다렸죠.

이윽고 겨울이 오자 그렇게 쌩쌩하던 벌들이 죽고 사라져 버려, 벌집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벌들에 대해서 그 간에 제가 찾아보았는데, 벌들이 살기 위해서 벌집 온도는 섭씨 35도로 유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벌들이 밖에서 열심히 일하며 날아다니고 벌집에 돌아오면 그 생성된 열 에너지로 벌집이 따뜻하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벌들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벌들이 엄청 바쁘게 일하고 날아다니듯이 복음에 나왔듯이 우리 인간도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음탕하게 살다가 결국 죽습니다. 왜 그럴까요? 벌집의 온도를 유지시켜야 하듯이 우리가 세워놓은 시스템을 유지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겨울이 온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잊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이 있습니다. 온도가 내려가서 벌집 안에의 생명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아 벌들이 죽듯이 우리도 언젠가 사라져 버립니다.

제가 스위스에 와서 처음 부임한 곳이 Dietikon입니다. 그 곳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큰 사제관이 있는데 내부도 시설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사제관에서 특히 제가 놀란 것은 지하실에 벙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벙커를 보고 놀란 제 모습을 보신 주임 신부님은 스위스에는 집집마다 벙커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살아남으려고 만든 것입니다.

핵전쟁이 나도 벙커 안에 들어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스위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핵전쟁이 나면 그 벙커는 무덤이 됩니다. 안간힘을 써서 벙커를 지으며 마음의 안정을 도모할 뿐입니다. 그러나 끝은 옵니다. 사실 우리는 인간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고 특히나 스위스는 그 체계가 안정적으로 잘 유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Rudolf Otto 의 “Das Heilige (1917)”라는 책을 아시나요?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Mysterium Tremendum (거룩한 전율) 입니다. 이것은 인간 근본 감정중에 하나이고 놀라움, 경이를 느낄 때 생기는 감각입니다. 안정된 체계 안에 있을 때에는 이것을 느끼는 것이 드물지만 가끔 그 시스템을 벗어났을 때, 운명이 우리의 삶에 간섭할 때, 죽음을 체험하는 순간에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그것을 통해 끝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도 합니다. 전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우리는 이런 감각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을 이 세상 밖에 있는 다른 차원이 우리의 시스템을 뚫고 개입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너지지 않는 영역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방주, 노아의 방주입니다. 이것은 성사이자 미사입니다. 여러분이 성사 안에, 미사 안에서 산다면 살아남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 살아남아 멋지게 만납시다. 아멘.


언급하신 도서 Rudolf Otto 의 Das Heilige (1917): 한글(구매) 영어(PDF 다운로드) 독일어(무료로 보기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