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 전에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입니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성지가지를 들고 예수님께 호산나를 외쳤으나 3-4일 후에 제2독서에서 이야기 하듯이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외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쉽게 변합니다. 태초에 인간은 다른 사람을 처벌하는데 사용되어 왔고 인간은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는 말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살펴보면 우리는 제대로 걸어왔는지요? 하느님의 창조의 의지를 실현하면서 살아왔는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을 다른 곳으로 몰고 갔습니다. 농구 게임을 보면 감독이 작전타임이라는 것을 하여 중간에 중단을 하고 다시 게임을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갑니다. 개입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는 개입을 하십니다. ‘감독의 뜻에 맞춰서 연기 좀 잘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독특하게도 감독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일반 게임은 그 정도는 진행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이 계속 진행하도록 허락하십니다. 만일 총연출자가 무대위로 올라오는 순간은 이 극은 끝이 납니다. 무대 위로 연출자가 올라오는 순간은 둘 중 하나입니다. 이 연출자를 배신하였으나 연극을 잘 마쳐서 무대 아래로 가거나 아니면 죽음에 이른 그 연출자가 무대 위로 올라가 어둠 속에서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한 번 우리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2000년 전에 말입니다. 이제는 잘 뉘우치고 잘 살아야 합니다.

2주 전 즈음에 인터넷에서 나온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활동한 공수부대 출신의 한명이 그 당시 무고한 농민을 총으로 사살 후 40년 후에 뉘우치고 가족을 만나 참회하며 사과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나머지 999명의 공수부대 출신들은 뉘우침 없이 혹은 그냥 잊고 현재 좋은사람 마냥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젠가 그들을 체벌하십니다.

그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착한 모습으로 살아갈 뿐,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참회하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60년 전에 베트남 참전 용사들 중에 무고한 양민을 죽였으나 참회를 하는 자가 있나요? 그들은 현재 좋은 아버지이자 좋은 이웃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주변에서 잘 받아주니 죄가 사라진 줄 압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겠습니다. 나에게 감춰진 죄가 없는지 말입니다. 이 연극을 잘 수행해서 박수를 받을 수 있는지요? 무대에서 내려가 죄 지은 것을 고백할 용기가 없다면 그 용기를 주님께 청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