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임금님은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를 열었고 사람들은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그야말로 큰 잔치입니다. 그 중에 미사는 잔치 중에 잔치입니다. 우리의 삶은 축제와 같습니다. 우리가 스위스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접할 수 없는 것이 축제적인 것입니다. 스위스에서는 국민성 때문인지 축제가 드뭅니다. 축제는 삶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며 주님과 함께할 때 더욱 풍요로움을 느끼고 감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미사는 축제의 핵심이며 그리스도는 우리를 초대하시는 Gastgeber(주최자)입니다.

어느 날 독일 북쪽에 사는 분이 겪으신 이야기입니다. 토요일 아침, 밖에 길에서 아가씨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옷도 잘 차려입고 화장도 예쁘게 한 차림이었습니다. 그 주변에 여자 친구들도 다 잘 차려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이 시청에서 하는 결혼식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할 때 공무원이 남편이 될 사람에게 질문을 “당신은 이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겠습니까?” 라고 하였는데, 거기서 남편이 “아니요.” 라고 이야기 한 뒤에 웃으며 “농담이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규정상 첫번째 대답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결혼이 무효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시청 공무원으로부터 ‘한번 아니면 아니다.’ 라는 단호한 대답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6개월 후에 다시 결혼식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제가 만일 그 여자의 입장이라면 그런 장소의 신성함을 침해하는 남자와는 결혼을 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뿐 아니라 스위스 전체에 미사 시작 전에 종이 울립니다. 주님은 혼인 잔치에 오라고 주님 자녀들을 초대합니다. 세례 받은 이, 견진 받은 이들을 말이죠. 그러나 다양한 핑계로 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해도 주님이 너그러워서 이해해 주시리라.’ 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이는 결혼식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니오’는 ‘아니오’ 입니다. 우리를 초대하신 그리스도는 모욕감을 느끼실 것입니다. 주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시고 농담도 이해하시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모독으로 받아들이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만큼 이 시대만큼 하느님을 모욕하는 때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주님께 봉헌하는지요?

이교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교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것은 하느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저 세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을 잘 준비해야 하늘에서도 축제에 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제밤에 중국 소림사의 계단 오르기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2등을 하였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피곤했었습니다. 이를 통해 크게 깨우쳤는데, 꿈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저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여기서 신성 모독을 하면 저 세상에서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초대에 응하고 축제에 참여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