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뉴스를 듣다 146번 버스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제가 휴가 중 종종 이용하는 버스입니다. 노원역 홍콩반점이 솜씨가 좋습니다. 거기에 갈 때면 이 버스를 탑니다. 그 옆에 있는 반찬가게에 갈 때도 이 버스를 탑니다. 그런데 이 버스 노선이 좀 독특합니다. 아마 가장 긴 노선을 가진 시내버스가 아닌가 싶은데요. 상계동 주공 APT 7단지에서 출발합니다. 중계와 먹골을 지나 건국대로 향합니다. 그 후 청담대교를 타고 한강을 건너 청담동을 거쳐 강남역에 도착합니다. 서울 외곽과 강남을 연결하는 긴 노선인 겁니다. 또 여기에 타는 사람들도 남다릅니다. 낮에는 일반 버스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새벽은 다릅니다. 언젠가 운동하려고 일찍 나온 적이 있는데 사람들을 한 가득 태우고 가더군요. 수락, 의정부 등에 있는 청소 노동자들이 새벽에 이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청소일을 가는 겁니다. 그래서 첫 차는 4시 5분에 있습니다 종점인 강남까지 늦어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일찍 출발하는 시내버스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 버스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관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146번 버스 이용자이신 어르신 한 분이 국무총리에게 부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신이 4시 10분에 첫 차를 타고 강남으로 청소일을 하러 가는데 더러 지각을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차 시간을 10분만 더 당겨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듣던 총리가 나중에 서울시장에게 전화로 사연을 얘기해 10분이 아닌 15분을 더 당겨 이제는 3시 50분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번호도 새로 바꿔서 8146번을 달고 달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게 좋은 복지의 예로 제시되더군요. 댓글이 900개가 넘겨 달렸는데 따뜻한 행정이라면서 사람들이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국무총리라면 상계동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중계 즈음에서 동부간선도로로 달리도록 해서 성수대교나 영동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가는 노선을 만들 겁니다. 그렇게 달리면 새벽이라면 30분 안에 강남에 도착합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한 시간 더 자고 일터로 향해도 됩니다. 즉 3시 50분이 아니라 5시에 출발해도 현장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돈이 좀 더 들고 법령도 개정해야 하지만 청와대도 옮기는데 그것 하나 못 할리 없습니다.

약자들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는커녕 더욱 더 노예처럼 살도록 억압하면서, 그것을 복지라고 주장하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분노하게 하고 슬프고 심지어 절망적인 것은 그 억압을 복지라고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약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종은 잠도 못 자고 주인을 기다립니다. 돌아온 주인은 고마운 마음에 자리에 앉히고, 오히려 그 종의 시중을 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무총리, 서울시장, 정치인들은 그렇게 잠을 못 자는 종에게 일하는 거 좋아한다면서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면서, 쉴 시간을 빼앗고 그것을 복지로 선전합니다. 또 국민들은 기뻐하고 고마워합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일이 우리에게 복지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인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요? 오히려 세상일에 빠져 기꺼이 주일에도 일하고 노는 삶, 노예의 삶을 기꺼이 살고 싶어 하지는 않나 싶습니다. 또 그것을 사람답게 사는 거라고, 복지혜택을 받는 거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주님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잠시 쉬고 노는 휴식 정도를 위해 살지 맙시다. 그건 노예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들이 다음 일을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식과 여가(餘暇)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인, 철학자, 예술가, 그리고 신앙인들만이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영원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만이, 즉 경신(敬神)을 살아가는 이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복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수준은 적어도 이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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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경신덕(敬神德) (마리아사랑 가톨릭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