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스위스 종신부제가 1980년대에 한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느 시골 여관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이분을 가만히 관찰하더니 서툰 영어로 “How old are you?”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는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혹시 독일어 “Gretchenfrage”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지식을 얻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파우스트 박사는 어느날 그레첸이라는 착하고 아름다울뿐 아니라 신앙심 깊은 젊은 여인을 알게되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대화 중 이 여인이 묻습니다. “파우스트 박사님, 당신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나요?” 이 대답에 그 파우스트 박사는 명료히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흐립니다. 그리고 그레첸은 파우스트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Gretchenfrage: 이것은 모든 것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질문을 뜻합니다. 나이에 대한 질문이 중요한가요?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질문입니다.

제가 7-8살 즈음에 외할머니가 저희 어머니에게 하셨던 말이 기억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불칼을 들고 와서 그것을 목에 가져다대고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을거다. 그 때 네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 천국에 가지만 부정하면 지옥에 간다. 꼭 기억하고 살아야 해.” 이렇게 신신당부하셨던 저희 외할머니는 세상에 가장 중요한 질문과 답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믿습니까?”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은 수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하는 일이 잘 될까?” “어디로 휴가를 갈까?” “어떻게 해야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등등의 질문들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부차적인 질문들입니다. 결정적인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고 있는가?” 이 질문에 머뭇거리지 말고 “아멘!”으로 답해야 합니다.

어제 제가 담당하는 Bonstetten 성당의 복사들과 함께 Verenaschlucht라는 곳으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작은 마을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이들과 동양인 신부가 우르르 들어오니, 한낮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던 세 어르신이 주목하시더군요. 그런데 저희는 보란듯이 함께 십자성호를 긋고 점심식사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겁니다. 신앙을 감추는 이에게 천국은 없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예, 믿습니다.”라고 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나 사랑해?” 이 때 남편이 머뭇거리거나 부연설명을 한다면 재앙이 시작됩니다. 사랑은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물론이지. 온 마음으로 사랑해!”라고 답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머뭇거림과 부연설명을 원하시지도, 또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아멘.

3분 교리 >

여러분들은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을 밖에서 잘 하시나요? 우리는 미사를 통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고백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정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러한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스위스 가톨릭 미디어가 있습니다. kath.ch 입니다. 이것은 주교님들이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도 하고 심지어는 교회에 반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5월은 어떤 달로 알고 계신가요? 바로 성모성월입니다. 이 성모성월에 이 미디어에서 성모님에 대해 공식적으로 모독적인 말이 난무했습니다. ‘성모님이 제왕절개 수술을 하셨다.’ 등등 말입니다. 이러한 행태를 주교님은 놔두고 계시고 답답해 하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신자들이 목소리를 내어 주교님들이 목소리를 내셔야 한다는 신앙을 고백하자는 서명을 하고자 합니다. 다함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서명사이트: https://openpetition.eu/!avem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