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하느님은 예외를 허용하십니다. 오늘 라자로가 좋은 예입니다. 하느님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은 예외를 허용하시는데 매일 예외를 허용하시면 아주 혼돈스러울 것입니다. 매번 무덤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무덤을 뚫고 다시 일어난다고 상상을 해보십시오. 보통 우리의 세상은 자연의 법칙에 따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의지는 확실하시고 이 자연의 법칙과 예외적인 것 두 양쪽을 왔다갔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예외가 가능할까요?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죽은 이를 삶으로 이끄는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이 눈물을 흘릴 만큼 호소한다면 그 분은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덟 아홉살 즈음에 입술 주위가 썩을 정도로 심하게 아픈 병을 6 개월 정도 앓았습니다. 너무 고통 스러웠고 매일 아침 마다 고통 속에서 일어나야 했었습니다. 하루는 저희 어머니께서 저녁에 자기 전에 눈물을 흘리시면서 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을 잤는데 다음 날 일어난 아침에 병이 싹 나았습니다. 6개월 만에 고통 없이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의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와 어머니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눈물로 주님께서 기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인간이 눈물을 흘려 인간이셨던 그리스도의 마음에 닿아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눈물을 흘리려고 할까요? 어떻게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리스도께 진정 호소할 수 있을까요? 마르타는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호소했을 것입니다. 왜 늦게 오셨는지 원망도 했을 테고 큰 슬픔에 눈물을 보였겠죠. 한편 오늘날 우리가 사는 환경은 죽음에 대한 슬픔을 촌스럽다 생각하고 그러한 슬픔을 외면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한 슬픔은 우리 삶에 맞지 않는다 하며 인생은 그냥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바른 모습일까요?

제가 독일어권에서 지내는 동안 겪었던 것 중에 한 장례식이 제 기억에 남습니다. 500명 정도 사는 작은 마을에서 한 빵집을 운영하신 한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장례 미사가 평일인 수요일에 이루어 졌는데 전체 마을 인구 500 명 중에 300 명이 장례식에 왔고 미사를 드리면서 사람들이 처절히 울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아주머니의 남편분께서 저에게 “굉장히 슬펐다. 그러나 이제 살 것 같다.” 라고 하셨습니다. 독일어권에서 그렇게 운 장례식은 저에게 처음이었습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울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는 것이 인정이 안되는 상황이 맞을까요?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슬퍼하며 우는 것이 인정되지 않고 기뻐하기만 해야 하는 것은 참 삶이 아닐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슬픈 순간이 있는지요? 그러면 마음 껏 슬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슬픈 상황에서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 버리고 그저 즐거워야만 하는 광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마르타처럼, 예수님처럼 우리는 기꺼이 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성체 전 말씀> 우리가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 마땅히 슬퍼하고 그것을 기념하십시오. 그리고 그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례입니다. 이것인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슬퍼하고 기념하며 이것을 승화시킵시다.

3분 교리> 다음 주일은 성지 주일입니다. 성지는 성지 가지에서 나온 말인데, 이 성지 가지를 받으면 1년 동안 잘 보관해놓으시고 그 뒤에 성당에 반납하면 그 성지를 태워서 재로 만들어 재의 수요일에 재를 바릅니다. 성지 주일이 지나면 성주간이 됩니다. 성주간 성목요일부터 성금요일, 성토요일 3일 동안 스스로를 점검합시다. 이 3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드리시면 큰 은총을 받으시고 그 힘으로 1년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러합니다. 만일 성 주간 미사 참여가 어려우신 분들은 제가 몇가지를 추천해드립니다. 요한 수난곡 그리고 마태 수난곡을 들어보세요. 성주간 때 성 금요일에 큰 대성당에서 이 수난곡을 연주하며 부릅니다. 그리고 참고로 성 목요일 저녁부터 부활절까지 한 묶음인데 이 시기 동안 금지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악기 연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노래는 가능합니다. 부활 전야 때 대영광송을 시작으로 오르간이 연주를 비로소 시작합니다. 그 다음 추천 드리는 바는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들으십시오. 모짜르트는 죽어가면서 이 작품을 썼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켰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