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요즈음 사순시기라서 영광송도 하지 않고 할렐루야도 하지 않으며 코로나 시기이기 때문에 성가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정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이 어떠하셨는지요? 아쉬운 마음이었는지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제1독서) 성서에서는 빛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 해방은 노력 없이 그냥 받은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제 곧 지나면 부활이고, 코로나도 끝날 것이고 즐거움 가운데 미사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빛을 좋아할까요? 제가 필리핀에서 1년 동안 지냈을 때 아침에 부엌에 가서 불을 켜면 바퀴벌레가 있다가 도망갔습니다. 쥐도 빛을 보면 도망갑니다. 모두가 빛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힘들더라도 빛을 향해 갈 것인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2011년에 후쿠시마에서 원전이 폭발하였습니다. 독일인들의 반응은 굉장히 컸습니다. 핵물질이 비를 타고 독일까지 올 것이다, 이것이 재앙의 전조이다. 등등 말입니다. 심지어 어떤 봉사하시는 자매님은 ‘핵폭탄이 터졌다.’ 고 말하며 굉장히 걱정을 하셨습니다. 게르만족의 위기에 반응하는 정도가 매우 컸습니다. 공포에 대한 예민성, 메르켈의 원전 포기 선언 등등. 여러분들은 스스로 어떠신가요? 두려움이 많으신가요? 한국인은 딱히 두려움이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오셨고 우리에게 두려움을 버리고 당신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건강에 대해서 매우 많이 걱정합니다. 그러나 몸도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영혼의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걱정, 근심, 공포가 많은 이 시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요?

저는 5년 전에 그 걱정, 근심, 공포에서 벗어날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정말 큰 공포, 두려움, 위기감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4년 전 메주고리 성지 순례를 할 때였습니다. 1주간 잘 지내고 돌아가기 전날 성지순례를 안내해주시던 자매님이 저에게 ‘오후 5시에 집 앞에 모여서 출발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오후 5시에 성모님이 신부님에게 발현할 것입니다.’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깜짝 놀라 잡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 했었습니다. 그 때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시고 모든 것은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 공포감은 건강한 공포입니다. 이는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어 주는 공포입니다.

어두운 가운데서 큰 빛, 우리의 몸을 떨게 하는 주님의 빛으로 나아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