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오늘 주님승천 대축일을 거행합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셨던 주님은 다시 높은 곳으로 향하십니다. 고개를 들어 사명을 다 마치신 후 돌아가시는 그분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는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오늘 교회는 마태오 복음의 맨 마지막 단락을 선포합니다. 승천하시는 주님을 제자들이 배웅하는 장면입니다. 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고 전합니다. 이어서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는 사실도 지적합니다. 수 년 동안 주님 곁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여행하고 또 기적을 목격했는데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을 통해 주님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도, 성령을 받는 큰 은총을 누렸는데도 여전히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의심일까요?

이것은 실체가 없는 의심입니다. 만약 누군가 제자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의심하느냐고 묻는다면 제자들은 자기들도 무엇을 의심하는지 모른다고 대답할 겁니다. 그냥 의심하는 겁니다. 그런데 답답해 보이더라도 이들의 의심을 질타해서는 안 됩니다. 의심은 진리 추구욕구의 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있기에 진리탐구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리를 탐구해야 할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동시에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고 그분의 모든 가르침을 지키도록 이끄는 사명을 내리십니다. 진리를 실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해 보라고 명하시는 겁니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그것이 맛있는지 밤낮으로 토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변태적인 토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한 숟가락 먹어보면 됩니다.

만약 신앙이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의심이 가시지 않나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 수 있습니다. 실천해 보십시오. 그러면 의심도 줄어듭니다.

새가 날아가기 위해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인간은 진리에 닿기 위해 그것을 직접 실험해야 합니다. 의심이 대유행처럼 번진 세상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고된 탐구의 날개짓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직접 한번 체험해 보시면 깨닫게 되실 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