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그것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살인은 당연히 안 되고 성을 내기는 커녕 음란한 생각조차 금하십니다. 완덕의 삶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본인 자신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요구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우리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오시면서 이렇게 완덕에 이른 분을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비슷한 인물을 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 저희 수도원 원장님이셨는데, 저녁 8시 마침기도 후에 바로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셨습니다. 겨울에도 방 보일러를 끄고 생활하셨고 심지어는 문도 조금 열어놓으셨습니다. 단식도 많이 하시고 기도도 많이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한 번은 월드컵 시즌에 한국 경기가 있어서 젊은 수도자들이 금요일 저녁 십자가의 길을 좀 더 빨리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세가 안 되어 있다면서 한 번 더 하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에게 법 이상을 요구하는 삶을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렇다면 이 분과 우리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모두 다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다릅니다. 예수님, 앞서 말씀드린 원장님, 모두 같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다릅니다. 우리에게 바로 그 열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얼마 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저희 스위스 성당 견진자들과 함께 쿠어에 가서 주교님을 뵙고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갔습니다. 제가 일부러 좋은 식당을 예약하고 식사도 소고기 안심스테이크와 돼지고기 등심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음식의 질도, 맛도 아주 좋았습니다. 아이들도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이들 대부분이 음식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15-16살이면 자기 몫을 먹고 더 먹을 텐데 말입니다. 며칠 동안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왜 그러는지를 말입니다. 항상 먹는 것이라 맛을 느낄 수가 없는 겁니다. 절실했던 적이 없으니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려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겁니다. 배고팠던 적이 없으니 배부르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외로운 적이 없었다면 같이 있어주는 이에게 고마워하지 못합니다. 아프지 않았다면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것을 절실히 갈구했던 시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마이너스의 단계를 겪은 자만이 플러스의 삶을 추구합니다. 같은 원리에 따라 고통을 겪었던 이들 안에서 비로소 삶을 살려는 열정이 생겨나는 겁니다. ‘고통’은 라틴어로 passio입니다. 이 단어는 동시에 ‘열정’을 뜻합니다.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 모든 고통이 우리에게 열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인간학은 고통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은 하나지만 그것을 겪는 두 가지 방식이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수동적인 방식입니다. 어려울 때 한숨을 쉬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언제 그 시간이 지나갈지 기다립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고통을 대합니다. 두 번째는 능동적인 방식입니다. 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부활하려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시는 주님의 모습 말입니다. 바로 이 적극적인 태도로 어려움을 이겨낼 때 열정이 탄생합니다. 이것을 아는 이는 나중에 닥치는 어려움을 피하기는커녕 스스로 그것을 찾아갑니다. 단식과 극기의 실천은 우연이 아닙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어떤 통 안에서 살아가시는 80세 미국인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10대 초반에 허파가 상해서 정상적으로는 숨을 쉬기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인공허파의 역할을 하는 큰 통 안에 들어가 살고 계십니다. 물론 머리와 입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공부도 하셔서 변호사 자격증도 얻으시고 그림도 그리시더군요. 그러면서 당신은 사는 게 재미있고 계속 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고난이 그 앞에서 무릎 꿇을 정도의 인내를 갖추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큰 열정을 지니고 계시구요.

사는 게 재미있나요? 인생의 맛을 즐기고 계십니까? 이제 곧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밑바닥으로 내려갑시다. 그래야 저 높이 올라가실 수 있을 겁니다. 열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시간을 능동적으로 견딜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서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님에 대한 사랑, 믿음, 희망, 그리고 신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아멘.